* 영토와 금서
열하일기를 보다가 흥미로운 대목이 있어 적어본다.
“그들은 요동이 본래 조선의 옛 땅인 것을 모르고, 숙신, 예맥과 동이의 잡족들이 모두들 위만조선에 복속하였던 것을 모를 뿐만 아니라 오랄, 영고탐, 후춘 등지가 본디 고구려의 옛 강토임을 모르고 있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옛 영토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저 독도를 뺏기지 않도록 안절부절한 상태라고나 할까.
이러한 오늘날의 풍토에 대해 연암이 꾸짓는 듯한 환영을 마주한다. 이어지는 대목은 고조선과 고구려의 옛 영토에 대한 얘기이지만, 이보다 더욱 관심을 끄는 건 조선이 고조선과 고구려를 잇고 있다는 개념이 오늘날 만든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했던 역사적 사실이라는 반가움이다.
“발해의 무왕 대무예가 일본의 성무왕에게 화답한 글에, ‘고구려의 옛 땅을 회복하고 부여의 유속을 가졌다.’는 구절이 있으니 이로써 본다면 한사군은 절반은 요동에 있고 절반은 여진에 있어 본래의 우리 강토를 가로지르고 있었던 사실이 명백하다. 한나라 이래로 중국에서 말하는 패수란 일정하지 아니하다. 그런데 우리나라 인사들은 반드시 지금의 평양을 표준으로 삼고는 저마끔 패수 자리를 찾고들 있다. 이것은 다름이 아니라 중국 사람들은 무릇 요동의 왼편 강물들을 몰밀어 패수라 하고 보니, 이정이 맞지를 않고, 사실이 어긋남이 모두 이 까닭이다. 그러므로 고조선과 고구려의 옛 땅을 알고저 할진대 먼저 여진의 국경을 맞추어 보아야 할 것이요, 다음으로 패수를 요동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패수의 자리가 확정된 뒤에야 영토와 경계가 밝혀질 것이요, 영토의 경계가 밝혀진 뒤에야 고금의 사실들이 부합될 것이다.”
지금이야 한반도의 영토에서 머무를 듯 싶지만,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영토란 항상 변하기 마련이다. 훗날 어디까지 옛 영토를 복원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지금의 영토보다야 넓어지지 않겠는가.
더불어 연암이 빌려 적은 책 제목 명단에 흥미로운 서적이 있어 기록해본다.
“분서, 장서, 속장서 - 이지 탁오 저”
바로 이탁오의 서적이 아닌가. 금서의 상징처럼 회자되는 분서를 연암이 읽었는지 아니 읽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연암의 어느 서적에도 이탁오의 서적을 읽었다는 글귀가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암이 읽지 않았다고 추정하기가 더욱 난감할 수도 있다. 기억이 가물하지만 연암의 글에서 이탁오의 글을 본 듯도 하다. 이는 열하일기를 읽다보면 확인이 가능하리라 기록만 남겨본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이탁오의 글귀를 적어본다. 흥미롭게도 이탁오를 글귀를 하이브리드세일즈라는 마케팅 서적에서 마주하고, 반가움에 기록해 논 글귀가 있어 첨부한다.
“어찌 가짜 사람이 거짓 말을 말하고 거짓 일을 일삼으며 거짓 글을 짓는 것이 아니겠는가? 대게 그 사람이 이미 가짜고 보면 거짓되지 않는 바가 없다. 이로 말미암아 거짓 말을 가지고 가짜 사람과 말하면 가짜 사람이 기뻐하며, 거짓 글로 가짜 사람과 이야기하면 가짜 사람이 기뻐한다. 어디를 가도 가짜 아닌 바가 없고 보면 기뻐하지 않는 바가 없게 된다. 온통 전부가 가짜고 보니 난쟁이가 어찌 진짜와 가짜를 변별할 수 있겠는가?”
이처럼 흥미로운 이야기를 펼쳤으니 금서가 되었을 리라. 개인적으로는 마지막 문구에 반했던 시절이 있었는데, 돌아보니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난쟁이 상태인 듯하다.
그렇다고 앞서 언급했던 산행경처럼 굳이 찾아서 이탁오의 서적을 읽지 않기를 바란다. 짧게 첨부하자면 이탁오는 불행한 일생을 살다갔다. 바로 자신이 쓴 서적 때문이다. 그러하니 이탁오의 서적이 읽는 이의 삶을 행복하게 해 줄 것 같지는 않다. 물론 돼지에서는 벗어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