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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열하일기

* 연암의 글이 지닌 매력

* 연암의 글이 지닌 매력

 

연암의 대표적인 단편들은 ‘나는 껄껄 선생이라오’에 실려 있다. 개인적으로는 그 중에서 ‘허생전’을 한국 최고의 단편소설로 꼽는다. 아마 연암의 소설들을 거론할 때쯤이면 열하일기의 통독이 끝나는 시점이리라.

 

연암의 글이 지닌 매력을 드러낸 대목이 있어 적어본다.

“봉황성을 한 30리 못 와서 옷이 모두 축축하게 젖고, 길 걷는 사람들의 수염에는 벼 잎에 달린 이슬인 양 구슬을 꿰어 놓은 듯이 방울이 맺혔다. 서쪽 하늘가에서 무거운 안개가 뚫리면서 새파란 조각하늘에 영롱한 빛을 드러내는 것이 흡사 작은 유리쪽을 붙인 창구멍처럼 터졌다. 이윽고 안개 기운은 맑은 구름으로 변하여 장엄한 광경이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동쪽으로 머리를 돌리니 벌써 붉은 햇발은 서 발 나마 솟았다.”

 

바로 묘사란 이런 것이다. 직접 눈으로 보는 듯한 생동감이 꿈틀거릴 만하지 않은가. 열하일기에는 이렇듯 직접 눈으로 보는 듯한 묘사가 꽤나 많이 등장한다. 이러한 묘사 부분에 감탄하여 열하일기를 읽는 이도 꽤 있다고 한다.

 

하지만 연암의 글이 지닌 매력은 묘사에 국한 되지 않는다. 오히려 묘사는 연암의 글이 지닌 진정한 매력을 감추는 장치일 수도 있다.

 

“죄다 들었지요. 아무래도 벽돌은 돌만 못하고, 돌은 잠만 못하군요.”

“딸 형제 다선 둔 집 앞에는 도적도 안 지나간다는 말이 있는데, 어째서 이것이 집 안에 숨은 도적이 아니겠습니까?”

 

이는 비록 연암이 일행의 말을 적은 것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연암의 글이 지닌 매력은 허를 찌르는 유머에 있다. 어떤 이들은 열하일기를 읽으면서 너무 재미있다는 표현을 하는 데, 이는 연암의 유머를 발견하는 재미를 일컫는다.

 

 

하지만 이러한 유머 역시 연암의 글이 지닌 진정한 매력이라고는 할 수 없다. 글의 매력이긴 하지만 연암의 글이 지닌 진정한 매력은 다름이 아니라 ‘깨우침’을 주는 표현에 있다.

 

“성공한 곳에는 두 번 안 가고, 만족을 알아차리는 것이 위태롭지 않으이!”

연암이 도박에서 돈을 딴 후, 더 하자는 일행들을 물리치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건넨 말이다. 돈을 잃은 이들이야 이 말에 속이 상하겠지만, 이 얼마나 지혜로운 처사인가?

 

비단 도박뿐만이 아니라 다른 것에 비추어 생각해도 어긋남이 없는 성공학의 구절이 아닌가. 오늘날의 시대에도 통용하고도 남는 성공원리가 아닌가.

 

바로 연암의 글이 지닌 진정한 매력은 시대를 초월한 ‘깨우침’에 있다. 이러한 연암이 글을 병법에 비유하여 글을 쓰는 법에 대해 논한 글이 있는데, 이 부분은 뒤에서 나오면 첨가하려 표시만 남겨둔다.(***)

 

종결의 글귀로 연암의 글이 지닌 매력인 묘사, 유머, 깨우침이 모두 담긴 대목을 실어본다.

“산기슭에 가려 아직도 백탑은 보이지 않는다. 말을 채찍질하여 수십 보를 못 가서 겨우 산기슭을 벗어나자 눈앞이 아찔해지며 눈에 헛것이 보일만치 벌어진 광경은 어마어마했다. 나는 오늘에야 비로소 사람이란 본시 어디고 붙어 의지하는 데가 없이 다만 하늘을 이고 땅을 밟아 제 신대로 다니게 마련임을 알았다. 말을 멈추고 사방을 휘둘러보다가 나도 모르게 손을 들어 이마에 대고 말했다. ‘한바탕 울 만한 자리로 구나!’ ”

 

만약 이 문장에서 별다른 감흥은 고사하고 좋은 글임을 인지하지 못 하는 이가 있다면, 이는 마치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읽고 ‘어 잘 썼네, 이런 건 나도 쓰겠네’라고 발설하는, 책이라곤 읽을 생각도 안 하면서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듯 행동하는 21세기 야만인일 뿐이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