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일대를 중도 포기한 보험 세일즈맨
J.F.드라이든(John Fairfield Dryden, 1839-1911)
1989년 국내 보험시장 진출에 이어 현대투자증권 등을 인수하면서 사실상 국내 1위 투신사가 된 푸르덴셜파이내셜(Prudential Fiancial)의 창업자 드라이든은 ‘3 Cent a Week'로 보험업의 시장을 개척한 세일즈맨 출신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견습공으로 공장에서 근무하면서 예일대학에 입학했다는 이력만으로도 그의 성공을 쉽게 예견할 수 있다. 그러나 힘들게 입학한 예일대학을 중도에 포기하는 비극을 맞이한다. 아마 예일대를 졸업한 드라이든이 존재했다면 지브롤터의 바위(The Rock of Gibralter)를 로고로 사용하는 회사는 탄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예일대학의 엘리트 환경을 경험한 20대의 젊은 드라이든은 아이트나 생명보험회사 사장을 찾아간다. 그는 영국 보험업의 발전상황을 연구하면서 생명보험을 노동자계층으로 보급할 확신을 춤고 보험 세일즈를 시작했다.
노동자들에게 보험 세일즈라는 새로운 시도를 위해 그는 2년간 무수한 공장을 돌아다니며 노동자 보험의 장점을 설명하면서 소액 보험자들을 유치했다. 하지만 소액보험자들 유치에 따른 수당으로는 생계유지가 힘들 정도였다. 그에게 보험 세일즈의 직접적인 성과는 없었지만 새로운 기장을 갖고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바셋과 하워드에게 투자를 받아 1875년 푸르덴셀 공제조합을 설립했다.
1875년 말 그가 세일즈에 성공한 보험은 279개였다. 그러나 1878년 11월 보험 가입자수는 7만 명을 돌파하기에 이르렀다. 그 후 경제공항이 휩쓸던 당시 서민들의 생활은 피폐했다. 생활고와 엄청나게 높은 사망률 등으로 보험의 손길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했다. 이때 등장한 ‘1주일에 3센트(3 Cents a Week)'는 평균수명이 짧았던 당시 1주일에 3센트씩이라도 모아 장례라도 제대로 치르게 하자는 상호부조의 뜻을 담고 있다.
회사의 성장과 맞추어 보험시장도 확대되면서 사회적 문제로 보험이 등장하는 사건이 있었다. 보험을 타기 위해서 부도덕한 범죄가 양산된 것이다. 이때 그의 대답은 당시 센세이션을 일으키기 충분했다. 여기에 드라이든의 보험 세일즈 철학이 담겨 있다.
“링컨 대통령이 흑인노예들을 해방시킬 때, 일부에서는 이에 반발해 무력까지 동원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링컨 대통령이 옳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보험이 모든 가정에 보급된다면 사회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칠 것이오.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오, 그리고 그때는 사람들도 한낱 장사꾼을 보는 눈으로 우리를 대하진 못할 것이오.”